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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이 너였다> 작가 하태완 인터뷰
“이미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글로 연결되어 있고 글로써 사람을 판단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저는 글이야말로 최상의 포트폴리오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의 말이다. 그는 <우리는 모두 저자가 되어야 한다>는 책의 서문에서 “생각한 것을 글로 쓸 수 있을 때 개인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고 했다.
소셜 미디어는 글쓰기를 일상으로 만들었고, 일상을 글의 소재로 끌어당겼다. 다만 매일매일 짧은 글을 올리는 것만으로 삶이 바뀐 이들이 생겼다.
SNS 작가의 등장이다. 지난 2월 출간된 하태완 작가의 <모든 순간이 너였다>는 89쇄를 찍었다. 3월부터 4월 셋째 주까지 교보문고, 예스 24, 인터파크 도서 등 주요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1~3위에 오르고 있다. SNS에서 나비처럼 날아오른 하태완 작가의 글은 출판계의 태풍이 됐다. 40만 명가량의 팔로워가 그의 글을 구독하고 있다.
<모든 순간이 너였다> 작품 이미지(사진=위즈덤하우스)
<모든 순간이 너였다>를 펴낸 허주현 편집자는 “평소 책을 잘 사지 않던 이들이 처음 사본 책이 이 책이었다는 반응도 있다”고 한다. 서점에 가지 않던 독자, 책과 거리가 멀었던 이들이 SNS를 통해 서점으로 유입된다.
작가가 되는 등단의 문턱은 낮아지고, 독자가 되는 서점의 문턱 역시 낮아졌다. 이들이 글로 얻고자 하는 건 지식이 아니다. 공감이자 위로다.
SNS 작가는 자기계발서에 나올 만한 입지전적 인물도 아니고 문학계에 한 획을 그을 만큼 비범한 문장을 쓰지도 않는다.
하태완 작가는 스스로를 “그냥, 그저, 그런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SNS 작가들이 사용하는 문장은 미문(美文)이라기보다 평서문이다. 평범에 너무도 가까운 일상의 말이다.
<모든 순간이 너였다> 하태완 작가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태풍이 지겹도록 몰아치는 마음으로, 채 돛을 달지도 못한 배를 띄우는 성격 급한 욕심으로, 그리고 떨어지는 별똥별에 일부러 눈을 감아버리는 미련함을 모두 모아 글로 써내린다.”
하태완 작가가 쓴 작가 소개다. 언제나 유치한 사랑을 꿈꾸며 늘 ‘사랑하자’고 외치면서도 정작 사랑이 찾아오면 제 발로 차버리는 ‘그냥, 그저, 그런 사람’이라고 말이다.
하태완 작가의 글은 길지 않다. 대신 꾸준하다. 그의 글을 읽는 습관이 들면 길들여진다. 특히 그의 글은 자신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상대방을 향한다. 일기라기보다는 편지다. 편지를 기다리는 마음은, 날이 쌓일수록 배가된다.
작가 역시 말보다는 글이 편한 사람이다. 인터뷰 요청에도 말이 아니라 글로 응했다. 자신이 쓴 글 중 하태완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글은 ‘너와 살고 싶은 계절’이다. 글을 보면 작가의 솔직한 심성을 짐작할 수 있다.
“너와는 여름에 살고 싶어./ 차갑지 않은 햇볕이 내리쬐고/ 퍽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오는 여름/ 식고 싶지 않다는 말이야./ 이왕이면 철이 들지 않는 것도 좋겠다./ 우리는 계속 뜨거울 수 있어./ 차가운 표정은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으니까.”
글은, 결국 너와 함께하는 계절이라면 여름이든, 봄이든, 가을이든 상관없다는 고백으로 끝난다. 문맥이나 문법과는 상관없이, 마음속에 흐르는 말들을 그대로 담아낸 글이다. 작가 역시 자기 자신과 가장 닮은 글이라고 했다.
SNS에 글쓰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음악을 하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만두게 됐는데, 무너질 대로 무너진 마음을 저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으로 SNS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탓에 초창기 저의 SNS에 올라오는 글들은 대부분 어둡고 우울했던 기억이 납니다.
<모든 순간이 너였다> 본문 이미지
당시 글쓰기는 하태완 작가에게 어떤 의미였나요?
처음에는 저 자신을 망가뜨리기 위해 글을 썼어요. 우울한 날에는 더 깊은 우울 속에 빠지기 위해 글을 썼고요. 그런데 그 글이 누군가에게는 ‘나도 그렇다’는 위로와 공감을 드리더라고요. 제게는 그게 다시 위로가 됐어요. ‘이렇게 못난 나도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구나’ 싶어서요. 이렇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제가 쓰는 글이 ‘당신’에게 힘이 될 수 있다면 좀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모든 순간이 너였다>는 책제목처럼 SNS 글 ‘#너에게’ 역시 상대가 존재합니다. 자기 자신보다는 상대방에게 말하기에 가까워 보이는데요.
저는 대개 글을 쓸 때 누군가에게 하고 싶지만 그런 용기가 나지 않는 말들을 쓰고는 합니다. 애초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 중에서도 차마 건네지 못했던, 못할 것만 같은 말들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였거든요.
하루에 글 쓰는 시간은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시간을 따로 정해놓고 쓰지는 않지만 오후 4~5시 즈음 해가 지기 시작할 때 저도 모르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되더라고요. 작업실에 노을빛이 들어올 때 드는 많은 생각을 글로 표현하게 됩니다.
SNS를 통해 글이 전파되는 느낌과, 책으로 출간되는 느낌은 어떻게 다른가요?
처음에는 SNS에 올라오는 글과 종이에 인쇄돼 있는 글이 주는 힘의 차이점을 잘 알지 못했어요. 최근에 출간한 책 <모든 순간이 너였다>가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감사 메시지가 많이 오곤 하는데, 얼마 전에 제 책을 감명 깊게 읽으셨다는 독자분의 메시지를 통해 그 차이점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됐습니다. 평소 SNS로 많은 위로를 받고 있다가 책이 출간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곧바로 구매해서 읽었다는 메시지였는데요. 아무래도 가장 큰 차이점은 책을 읽은 사람이 받는 공감의 폭이 달라진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본인은 어떤 순간에 위로를 받나요?
저는 크게 두 가지 상황에서 위로를 받고는 하는데, 첫 번째는 제 글을 읽고는 오히려 저를 위해 달아주시는 위로의 댓글에 큰 위로를 받습니다. 저만 일방적으로 위로를 건네는 것이 아닌, 제가 쓴 글로 인해서 글쓴이인 저와 독자분들이 함께 서로를 위로하는 모습인 거죠. 두 번째는 지금 제 상황에 맞는 노래를 듣는 것으로 자신을 위로하고는 합니다. 좋은 가사에 좋은 멜로디가 입혀진다는 것, 그 자체로도 큰 위로가 되더라고요.
하태완 작가가 좋아하는 글과 음악의 공통점,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처음에는 글과 음악은 별개라고 여겨 더 이상 음악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많이 상심했습니다. 하지만 음악이나 글이나 창작자의 생각을 표현하고, 그것을 전달하고, 그렇게 전달된 하나의 작품이 누군가에게 읽히고 들려진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차이점이라 하면 그 역시 읽고 듣는 사람들이 받게 되는 느낌의 차이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태완 작가
가장 아끼는 책이 있다면요?
어릴 적에는 부모님을 따라 매주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또 빌려오곤 했는데 사실 모든 책이 기억에 남아 있지는 않아요. 그중에 단 한 권만이 아직도 제 책장에 있고, 모든 내용을 기억합니다. 호아킴 데 포사다 작가의 <마시멜로 이야기>입니다. 자기계발서이기는 하지만, 어린 나이에 읽기에도 어려움이 없을 만큼 쉽고 유익한 말들로 책을 엮어놓은 덕에 아주 재미있게 몇 번이고 다시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SNS 문학의 가장 대표적인 작가로 꼽힙니다. 기존의 문학과 SNS 문학의 차이가 있다면요?
아무래도 SNS 문학이 기존의 문학에 비해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부분은 지울 수 없겠지만, 독자들에게 기존의 문학보다 쉽게 접해할 수 있고 작가의 그 당시 생각이나 감정을 가장 빠르게 보고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는 비교적 장점이라 말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글쓰기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분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면요?
글과 문학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크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꼭 일반인은 구사할 수 없는 단어들로 멋진 문장을 써야 한다는 의무는 없습니다.
저는 어찌 됐든 읽히는 행복으로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보다 많은 분들에게, 더 많은 연령층에게 제 글이 읽히기를 바랍니다.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쓰고자 하는 문장에 진심을 담는다면 무엇이든 가능하고, 진심이 주는 힘은 그 누구의 상상보다 훨씬 초월한 힘을 발휘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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